<10. 31.(일) 결승전 3번기>

1국 김경중 九段 對 최영기 7단

시월의 마지막 날 아침, 결전의 해가 밝았다. 문화의 달이기도 한 시월 내내 이어진 축제가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대망의 결승전에서는 자유 시간이 30분씩 주어지며, 초읽기는 똑같이 30초 3회다. 90분 안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점수를 계산해 승패를 가른다. 3번기 중 두 국을 이기면 우승이며, 나머지 규칙은 (사)대한장기협회 점수제 규칙과 같다. 양 대국자인 김경중 九段과 최영기 7단, 입회 최성우 九段, 해설 김승래 九段, 총괄 진행 장소룡 六段, 계시 최민혁 二段이 경건한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楚漢을 가린 결과, 김경중 九段이 楚, 최영기 7단이 漢으로 갈렸다. 김경중 九段은 1994년에 입단해 1996년부터 2·3·4회 국수전 우승, 7·8·11회 명인전 우승, 1·3회 총재배 장기 최강자전 우승, 2003·2005·2011·2016 KBS 장기왕전 우승 등 열 번이 넘는 공식 대회 우승을 기록했으며, ‘국수’와 ‘명인’두 칭호를 가지고 있는 한국 장기 프로계의 자존심이다. 이에 맞서는 최영기 7단은 (사)대한장기협회에 다섯 명뿐인 아마 7단 중 한 명이다. 전국 대회 우승 이력이 있는 최영기 아마는 아마추어 최고수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대국이 시작되고 귀마 대 귀마의 초반 수순이 물 흐르듯 진행됐다. 楚에서는 중包 전술을 택했다. 김경중 九段이 중포를 얼마나 귀신같이 활용하는지, 이름에 중(中)자가 들어가야만 중포를 잘 운용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20수에 대車가 이루어지고, 각자가 하나 남은 車의 활로를 트기까지는 탐색전이었다. 楚에서 25수로 01 車가 漢진영의 끝까지 들어가는 감각이 날카로웠다. 그 車가 13에 들어가면서 수가 난다는 것이다. 漢에서 잠깐 생각하다가 면包를 55로 띄웠다. 楚가 74卒을 64로 톡 쏘자 漢에서 하包하고자 宮이 돌았는데, 그 모양이 약간 불안해 보였다. 두 대국자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31수로 楚의 중앙象이 兵을 하나 취하며 漢의 좌진에 살짝 금이 갔다. 漢에서 수비하는 과정에서 34수로 兵을 벌리며 車를 쫓았는데, 그 수가 오히려 그 車의 침투를 허용하는 빌미가 됐다. 41수로 漢馬가 죽자 점수 차이가 쫓아가기 힘들 만큼 벌어졌다. 급하게 잘못 쫓아가다가 다리가 찢어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이후 초에서 51수로 귀윗象이 떠서 귀馬를 노려보자, 楚에서는 기물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고 漢에서는 양象이 뭉쳐 있었다. 53수로 楚車가 48에 들어서서 象을 걸자 漢에서는 양象에 車까지 묶인 모양이 돼 버렸다. 두 대국자가 장기판을 쏘아봤다. 눈빛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장기판에 구멍이 나는 줄 알았다.

67수로 楚車가 漢의 독兵을 취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고 卒을 중원으로 모았다. 변방의 작은 기물을 취하는 것이 불필요한 살생이라는 뜻인가? 이후에 73수로 楚에서 宮을 내려 궁단속에 들어가자 단단해졌다. 점수로 이기기 시작한 시점에서, 무리한 공격보다는 안정적인 운영을 택한 것이다.

漢에서 80수째 두자, 楚는 초읽기가 시작됐지만 漢은 자유 시간이 10분도 넘게 남아 있었다. 漢에서 84수째에 면包를 들여 楚의 馬와 象을 치는 선택을 했다. 그러자 내내 뭉쳐 있던 象들의 숨통이 어느 정도 트였다. 漢에서 뛰는 기물이 많아 楚에서도 절대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곧 漢象 하나가 죽어서 뛰는 기물의 개수도 같아졌다. 漢에서 108수로 12 象을 44로 올리며 일격을 노렸지만, 우사줄의 楚包가 좌사줄로 도니 별 효력이 없었다. 113수까지 진행된 뒤 漢이 투료함으로써 결승 1국이 끝났다. 楚의 공격이 분명 날카로웠고, 漢에서도 결승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대국을 보여주기 위해 끝까지 잘 뒀다.

 

2국 최영기 7단 對 김경중 九段

 두 대국자가 점심을 먹고 두뇌에 포도당을 보충했을 것이다. 오후 햇살과 든든한 밥심에 나른해질 수도 있다는 점은 조심해야 했다. 1국에서 김경중 九段이 楚, 최영기 7단이 漢을 잡았으니 2국에서는 반대로 최영기 7단이 楚, 김경중 九段이 漢을 잡는 것이 규정이다.

1국과 마찬가지로 초반 수순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楚가 13수로 왼쪽 士를 들었다. 양士등을 하는가 싶었지만, 士가 빠진 자리에 宮이 들어가서 궁단속을 했다. 17수부터 24수까지 서로 찻길을 내주지 않기 위한 팽팽한 반복수가 벌어졌다. 이후 대車가 되고 나서 양쪽에서 궁단속과 양包 분할이 순조로웠다. 교과서에서 본 듯한 모양이었다.

楚가 펼친 車 쫓기 작전이 먹혀들어, 42수째에 漢車가 5선에서 2선으로 내려갔다. 43수로 楚車가 한 칸 들어서며 공격을 시도했으나 44수로 漢包가 車를 거니 여의치 않았다. 楚에서 卒들을 중앙으로 모으자, 2선으로 내려갔던 漢車가 52수째 다시 5선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楚에서 대車를 청하고 漢에서 받아주는 진행이 이어졌다. 그러니 59수째에 반면을 보니, 다른 기물들은 장기판을 벗어난 게 없는데 네 문의 車만 빠져 있었다.

60수로 漢包가 卒을 치니 漢에서 包 하나를 들여 馬象을 득한 모양이 됐다. 車가 없는 장기판에 漢은 뛰는 기물 넷이 다 살아 있었지만, 楚는 馬象이 하나씩 둘뿐이 돼 버린 것이다. 목이 메어 물이 켜이는지 두 대국자가 정수기를 찾았다.

楚에서는 양卒이 5선에 올라 공격 준비 태세를 갖추고 漢에서는 양兵이 안정적인 수비 형태를 취하고 있는 가운데, 폭풍이 휘몰아치기 전 고요함이 있듯 반면에서는 한동안 큰 움직임이 없었다. 88수로 漢에서 67 馬가 79 변으로 뜬 게 호수였다. 마불변행의 기리를 뒤엎는 발상이었다. 楚에서 士를 올려 응수하자, 漢의 중앙象이 떠서 면包를 거는 수가 성립했다. 면包가 피하니 馬가 包와 象을 거는 작전이 들어맞은 것이다. 이후 진행까지 종합했을 때, 漢에서 또 包 하나를 들여 馬象을 득한 셈이었다. 楚에서는 양包만 가지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110수가 지나고, 楚가 宮을 들어 바깥에 뺐다. 김경중 九段이 2021 ICOC배 국가대표 선발전의 우승자로, 또 하나의 타이틀을 쟁취하는 순간이었다. 두 대국자가 양손으로 가슴 벅찬 악수로써 인사를 나눴다. 본선을 지켜보면서 살펴보니, 준우승자인 최영기 7단은 대국이 끝나면 이기든 지든 꼭 악수를 청한다. 이처럼 이기고 비기고 짐의 여부를 떠나서 한바탕 승부 이후 상대 대국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장기인으로서 취해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우승을 거머쥔 김경중 국수께 다시 한 번 축하의 박수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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